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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3-3] 가족과 잘 지낼 수 없으면 사회생활이 잘 될 리 없다
작성자 : msk 2016/09/01 09:07    읽음 : 604

보람 있게 보낸 하루는 잠자리가 편하듯이,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최후를 가져온다.

다빈치이탈리아 화가

아버지는 꼼꼼한 성격이라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고 보는 할아버지의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늘 황당무계한 일을 생각해내고, 또 그것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이 방법이 안 되면 저 방법으로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큰 병원을 짓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는 등, 돈을 끝도 없이 썼다. 끝없이 펼쳐지는 할아버지의 뒤치다꺼리와 병원 경영까지, 뒤에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직원들과 가족을 살핀 것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참으로 심성 곱고 배려 깊은 여성으로,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할아버지의 뒤치다꺼리에 늘 눈과 귀를 가리는 태도로 일관해, 옆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다. 아마도 그 일생의 반은 할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피는 받았어도 왠지 할머니의 피는 전혀 받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집안을 망칠 정도의 일은 없었지만, 달까지 두 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여행한 분인 만큼, 어머니의 여행비용을 전부 저축했다면 병원이 하나 더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첫 여행은 유럽에서 유학 중이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간 여행이었다. 지금이야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젊은 부인이 배로 50일이나 걸리는 여행을 혼자 하는 것이었으므로,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1924년 당시 어머니는 스물아홉이었다. 나는 이 기나긴 여행에 대한 어머니의 고생담을 들은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유달리 자기를 싫어해 자기의 부정적인 상황을 결코 남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한 마디로 모험여행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기죽는 일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결정하고 스스로 실행했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메에지다이쇼쇼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여기에는 상을 드리고 싶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참고 지냈던 점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했다. 어머니는 그래서 행복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점은 일처리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으로, 가족이라고 해서 봐주는 일이 없었다. 예전에 어머니에게 빚을 진 적이 있었다. 병원은 시작했지만 직원들 월급날이면 늘 걱정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산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증서를 제대로 써와라. 부모 자식 간이라도 금전에 관해서는 남한테 돈을 빌리는 것과 똑같아야 하는 게야. 이자도 꼬박꼬박 받을 테니 그리 알거라.”

이리하여 나는 정식 증서를 작성했고, 어머니에게 빌린 돈을 매월 갚아 나갔다.

19841216일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해 107일 즈음, 어머니는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을 호소했다. 담낭 염증 증상이었다. 1114, 친구가 경영하는 요쓰야의 하야시 병원에서 개복 수술을 했다. 담낭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악성종양으로 변형되어 있었고, 친구는 우리에게 각오할 것을 일렀다. 어머니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식욕도 되찾지 못했다. 1211, 생일을 무사히 맞이해 만 89세가 되었다.

11월 하순, 어머니는 경단이 먹고 싶다고 했다. 큰 며느리가 고토토이 경단(스미다가와 왼쪽 고토토이 다리 근처에서 파는 경단으로 유명하다-옮긴이)을 사왔다. 어머니는 딱 한 조각을 먹었다.

19841216일 오후 934분 호흡과 심장이 멈췄다. 나와 아내, 남동생 내외, 조카, 장남 내외, 차남 내외, 장녀 게이코, 처남 내외, 그리고 어머니가 아꼈던 가정부 오구라가 머리맡에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양 발에 손을 대 보았다. 따뜻했다. 그러나 그것도 점차 식어갔다.

다음 날, 게이오 의과대학 병리학교실에서 어머니 시신을 해부했다. 아버지의 해부에 동의한 것은 어머니였으므로 어머니를 해부하는 것도 의무라고, 나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미리 부탁드렸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어머니의 유언장이 나왔다. 그 안에는 장례식은 종교의식 없이 간소하고 치르고, 의학 진보를 위해 해부를 부탁한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미 어머니의 의지대로 했다. 단 한 가지, 어머니가 예전부터 희망하셨던 산골(散骨, 뼛가루를 뿌리는 것-옮긴이)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마음에 남는다. 게시물 내용 보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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